스위스 안락사 캡슐 '사르코'에 대한 모든 것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스위스에서 개발된 안락사 캡슐 '사르코(Sacro)'의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뉴스가 최근 알려지며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 기기는 안락사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상용화와 관련해서는 스위스 내부에서 수많은 법적·윤리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사크로의 탄생부터 이용 방법 및 가격, 사르코가 야기한 논란까지 자세히 알아보자.
사르코, 누가 만들었나
사르코 안락사 캡슐은 2017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르코'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영단어 'sarcophagus(석관)'의 줄임말이다.
사르코는 호주 출신 의사인 필립 니치케 (Philip Nitschke) 박사에 의해 설계됐다. 필립 니치케 박사는 자살권 옹호자로서, 오랫동안 '죽을 권리' 운동을 해왔고 '죽음의 의사(Dr. Death)'로 불리고 있다. 니치케 박사는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안락사와 자살 지원에 대한 교육 및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르코는 니치케 박사가 죽음에 대한 자율적 선택권을 강조하며 개발한 기기로, 단순한 약물 주입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캡슐을 조작해 무통 상태로 사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10분 안에 고통 없이... 사르코의 원리
사르코는 캡슐 내 산소를 질소로 바꿔 저산소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 캡슐 안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캡슐 내 산소 농도가 5% 이하로 떨어져, 캡슐 안의 사람은 약 5~10분 만에 사망하게 된다.
질소에 의해 사람이 사망할 때는 아주 약한 몽롱함, 무기력함을 빼고는 아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질소는 반응성이 낮기 때문에, 고농도의 질소 가스가 유입되어도 사람의 감각기관은 이를 인지할 수 없다고 한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감각기관은 이를 인지하지만, 산소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질소가스를 마시고 있어도 뇌는 폐와 심장으로부터 어떠한 이상신호를 받지 않는다. 때문에 사르코 캡슐 안에서 사람은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르코의 비용, 사용 대상
사르코의 비용은 18 스위스 프랑이다. 원화로는 약 2만 8천 원 정도다. 산소를 대체할 질소 비용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캡슐의 최소 연령제한은 50세로 정해져있지만, 엑시트 인터내셔널의 자문위원인 피오나 스튜어트 변호사는 "18세 이상의 중환자가 있다면 나이를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사르코는 키가 1m 73cm 이하인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개발팀은 부부가 함께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이중 사르코'를 제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인 신청 방법은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사르코 홈페이지에서는 사르코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원할 경우 이메일로 연락할 것을 공지하고 있다. (contact@exitinternational.net)
사르코의 사용 방법
사르코의 사용 방법은 너무나 간단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 사르코를 이용하기 위해선 의무적으로 정신의학적 평가를 받고 통과해야 한다. 캡슐에 들어가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버튼을 누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지 등 세 가지 질문이 나오고 이에 답해야 한다.
- 세가지 질문에 모두 답한 뒤, 최종적으로 '사망에 이르고 싶다면 이 버튼을 누르시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온다. 초록 버튼을 누르면 30초 이내에 공기 중 산소량이 21%에서 0.03%로 급격하게 떨어지며 숨을 거두게 된다. 사망 전 약 5분 동안은 무의식 상태에 빠지게 된다.
- 일단 버튼을 누르면, 취소하거나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사르코 1호 사용자는 누구?
2024년 7월 17일 사르코를 통한 조력 죽음이 예정됐던 사람은, 미국인 55세 여성이다. 미국 조지아주 콜럼버스 출신의 전직 보험회사 직원인 이 여성은 2017년부터 심각한 건강문제로 고통받기 시작했고, 사르코를 통한 조력 자살을 원했다. 엑시트 인터내셔널은 첫 사용자의 개인신상을 밝히지 않기로 했었지만, 여러 출처를 통해 정보가 공개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여성은 사르코의 첫 이용자가 되지 못했다. 니치케 박사가 이 여성에 대한 사르코 사용 거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니치케 박사는 몇 주간 해당 여성의 상태를 관찰하고, 진술을 토대로 판단했을 때 (조력 자살이 필요한 상태가 아닌) 심각한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으로 진단했다. 이 여성은 사르코 부적합 판정을 받고 실종됐던 이후, 다른 기관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 니치케 박사는 사르코를 사용하려는 지원자들의 심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사르코 1호 사용자는 나오지 않은 셈이다.
다음 포스팅에는 이어서 사르코에 대한 찬반 논란과 합법성 등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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