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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라이프 스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DIY 가족의 탄생? 본문
며칠 전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개정증보판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책은 2020년 초판이 나왔는데,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새로운 에세이 4편과, 초판에는 실리지 않았던 두 작가의 일상과 생활공간, 고양이 가족사진들이 풀컬러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2020년에 읽었던 초판을 다시 한번 들춰본다.
혼자 살기, 둘이 살기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여자 둘이 살아가는 얘기다. 나름 만족스러운 싱글라이프를 보내던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되고, 함께 살기로 의기투합한 후 집을 구하고, 살림을 합치고, 서로의 삶의 패턴에 적응해간다. 글 한편 한편이 맛깔스럽고, 생활감 가득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정겹다. 유년시절 이후 서울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또 여동생과 함께 10년 정도를 함께 살았던 나로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얘기들이 참 많았다.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초반 1년 정도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싸웠다. 뭔가 대단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익숙한 생활습관이나, 말하는 방식을 상대방이 이해 못할 때 그랬다. 10여 년간 그런 다툼을 반복하며, 어떤 것들은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게 되기도 하는 반면 도통 좁혀지지 않는 차이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ㅡ어찌 됐든 함께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물론 '이럴 거면 갈라 서자'고 말한 적도 수십 번이긴 하지만). 피가 섞인 혈육도 이럴 진데, 서로 수십 년간을 다르게 살아온 두 남녀가 한 살림으로 합치는 결혼생활은 얼마나 더 할까 싶다.
그러나 그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난한 싸움 속에서도, 삶의 배경은 아무래도 혼자 살 때보다는 조금씩 수준이 나아진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살 때는 옅은 우울감과 외로움, 예민함이 일상의 기저에 늘 도사렸지만 동생과 함께 살면서는 정신적으로 꽤나 편안해졌다. 동생과 살기 전 십여년 동안은, 혼자 독립된 공간에 사는 자취를 해본 적은 없다. 하숙이나 고시원, 하우스셰어 등 늘 누군가들과 함께 살긴 했는데,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주어진 타인'일뿐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린 나이부터 혼자 지내는 것을 너무 걱정해서,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주거형태를 추천했고 나도 그에 따라 살았지만, 그 사람들이 내 일상의 안전장치가 아니라 불안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음으로써 안전함을 느낀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와 유대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혼자 먹는 밥이 맛있고 혼자 하는 여행의 간편한 기동력을 사랑한다. 그런 한편으로 또 믿게 되었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감탄도 투덜거림도, 내적 독백으로 삼킬 만큼 삼켜본 뒤에는 입 밖에 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18p '혼자력 만렙을 찍어본 사람' )
(…) 하지만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같은 걸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가까워지지 않듯,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곁에 두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35p '두 종류의 사람')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115p, '싸움의 기술')
동거인의 상사였던 <W Korea> 이혜주 편집장님이 결혼 생활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119p, '테팔 대첩과 생일상')
'함께 사는 삶', 동거의 방식
책에서는 두 사람의 일상을 통해 '함께 사는 삶'에 대해 말한다. 사실 '동거'라고 하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의 비교대상 정도로 자리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결혼의 '미완성 버전'정도로.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싱글, 즉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서의 두 사람의 삶을 다른 무엇과 비교하지 않고, 그들의 삶의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그리고 '결혼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무언의 굴레 같은 것들을, 예리하게 꼬집고 있는 부분들도 있어서 아주 세련되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사실상 이날까지 지낼 용도로 쓰던 물건들이었다. 이날이라 함은 결혼 등으로 생활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본격적인 삶의 '진짜' 궤도에 오르는 날을 뜻한다. 하지만 사실 삶의 진짜 궤도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대입을 준비하는 기간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내 친구 황영주의 말마따나 학창 시절은 하나의 엄연한 '시절'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싱글로 사는 기간을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처럼 생각한다. 결혼을 점점 늦게 하는 추세인 요즘은 그 기간이 아주 길어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 기간을 '진짜 인생'의 서막처럼 여긴다면 긴 기간 동안 인생을 유예하며 사는 셈이 된다. (107-108p '두 일생이 합쳐지다')
"왜 내가 담그면 언니 김치의 이 맛이 안 날까요?" "형수님이 끓여주시는 시래기국이 우리 어머니가 해주던 것보다 더 맛있습니다." 한동안 나는 이런 말들이 칭찬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빤한 인사치레 같았다. 게다가 아빠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어서까지 집안의 제사와 차례 음식을 혼자 차려내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날 때도 있다. '엄마의 손맛'이라는 프레임으로 집밥을 신비화할수록 엄마들은 힘들어진다. 요리를 달하는 엄마들은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요리를 못하는 엄마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니까. (151-152p,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
나는 아직도 여학생들에게 관습적으로 주어지곤 한 단체 체육 활동이 어째서 피구였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게임 내내 공에 맞을까 전전긍긍하며 피해 다니다가 결국 맞으면 선 밖으로 나가야 하는 맥없는 룰을 가진 데다, 흰 배구공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심어주며 사회에 나와서 써먹을 일도 없는 이런 게임 말고도 여럿이 진지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정말로 축구나 농구라도 말이다. 팀의 일원이 되고, 같이 땀을 흘리고, 목표를 성취하는 작은 경험들이 여자들에게는 더 많이 필요하다. (200p, '망원 스포츠 클럽')
책이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마음이 따뜻해진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져서 그렇다. 혼자로서는 버거운 일들도 둘이 함께면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깨우치고 감사해하는 그 과정이 아름다워서 그렇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서로를 필연적으로 귀찮게 하게 마련이며 가끔은 타이어 파손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만들기도 한다. 동거인이 없는 일주일 동안 내 생활은 아주 매끄럽고 여유로웠으며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상실은, 웃을 일이 사라졌다는 거다. 나는 일이 많고 고된 주간을 보내면서 힘들어서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가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쩌면 혼자 거친 식사를 하고 내내 긴장한 채로 지낸 데다 늘 유쾌하게 밝혀있던 농담의 스위치가 꺼지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졌던 건 아닐까?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긴장, 걱정을 해소시켜주는 건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 사소한 장난, 시시콜콜한 농담,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워너원의 노래 <갖고 싶어>에는 '매일 하루의 끝에 시답지 않은 얘길 하고 싶은데" 하는 가사가 나온다.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쓸모없고 시시한 말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한 사람쯤은 갖고 싶은 것이다. (240-241p, '혼자 보낸 일주일')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골똘해하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나 불안은 나도 모르게 털어버릴 수 있고, 함께 살면 그 현상이 수시로 일어나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한다. (중략) 마치 혼자 여행 다니다가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면 마음이 놓이면서 그제야 이전에 얼마나 긴장한 채,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다녔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과도 비슷했다. (248p)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결혼 생활에 대한 하루키의 말처럼, 우리도 좋을 때는 정말 좋다. 별것 아닌 농담에 웃고, 서로의 취향을 넓히는 음악을 번갈아 틀어놓은 채 바보 같은 춤도 같이 추고, 기운 빠지는 하루의 끝에 나를 다독여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확인해 주는 누군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람의 인생에 그런 행운이 여러 번 찾아오기도 할까? (262p, '우리가 헤어진다면')
다양한 가족의 형태
비혼주의나 딩크족, 1인 가구나 조립식 분자 가족 등. 4인 가족을 벗어난 범주의 생활인들을 일종의 '괴짜'처럼 날카롭게 바라보던 사회의 시선은 꽤나 무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무조건 타인에게 이해받을 이유는 없지만, 그게 나의 생존과 연관된 것이라면 마땅히 이해시키고 이해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시대에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아주 맹렬하다. 그들에 귀를 기울이면, 지난 역사에서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비합리적인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게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제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가치를 폄훼하거나, 남성혐오를 바탕으로 한 비혼주의를 주창한다거나 하는. 이 문제에서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더 옳다고 여기거나, 혹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활패턴에 더 맞다고 판단하는 방식에 따르면 될 뿐.
사실은 이 책도 그런 '분자 가족'의 당위성을 피력하거나 강요하는 내용일까 봐 읽기 전부터 마음속에 울타리를 두른 것이었다. 그러나 '언니'들의 이야기는 뭉근한 온돌 같았고, 군더더기 없는 명료한 메시지는 맨 마지막 장에 있었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 (271p,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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