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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를 보는 관점

모던피라미 202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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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및 일자리 질 저하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중심축이 되면서, 이들에 대한 여러 담론과 논의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돼왔다. 책 <90년대생이 온다>의 흥행을 비롯해, 관련 도서들이 쏟아져나왔다. 

밀레니얼세대에 이어 등장한 세대는 'Z세대'다. 인류통계학자들은 일반적으로 1990년대 중/후반 생부터 2010년대 초반생까지를 Z세대로 분류한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묶어 우리는 보통 'MZ세대'라고 통칭한다. 사회, 문화, 경제 그 어느 분야에서도 MZ세대를 제외하곤 '얘기가 안 되는' 시대다.
 
MZ세대는 소비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며,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기업의 조직에서 '허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복잡다단한 집단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같은 범주 안에서도 세대차를 느끼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밀레니얼 세대이지만 4~5살 이상 차이가 나는 지인들과 가깝게 소통하면서도, 때로는 나와는 확연히 다른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 크게 놀랄 때가 많다. 같은 세대로서도 이런데, 기성세대는 밀레니얼들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쉬이 짐작이 간다.

2020년 출간된 정지우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를 최근 다시 읽고서 든 생각은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다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기성세대에겐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고,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그의 메시지가 위로로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책의 표지에 쓰여있듯 이 책은 '밀레니얼 세대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1987년생으로서 그 스스로 밀레니얼 세대인 작가는 아주 다양한 이슈와 함께, 다양한 층위에서 밀레니얼 세대에 접근하고 꼼꼼하게 해설하고 있다. 구성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진다. 1) 밀레니얼 세대의 삶과 가치관 2) 젠더이슈 3) 공동체. 개인적으로는 젠더이슈를 다루는 2장부터는 조금 집중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정말 많았다. 특히 일상적인 현상을 다양한 사회문화적 원인으로 해석하는 작가의 통찰력에 여러 번 감탄했다.
 

이런 이중성은 밀레니얼 삶의 전반에서 나타난다. 어느 한쪽의 가치에 절대적으로 기울이지 않고, 어느 하나를 추구하는가 싶으면 다른 한 측면으로 이동하는 식의 '시소적인 세계관'이 이들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좋게 말한다면 균형감각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결정장애'적인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코 한쪽으로 온전히 넘어갈 수 없이, 그러한 넘어감이나 치우침 자체에 불안함을 느끼고 다시 곧장 스스로의 위치를 재점검하면서 다른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 근본 바탕은 '불안'이다.

기성세대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혹은 사회문화적으로 비교적 공고한 가치관 속에서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인생에서 어떤 확신 어린 상태를 부여받곤 했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처음부터 '확고한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모든 가치관은 온라인에서 하나의 '관점'으로 전락하고, 상대적인 것이 되며, 존중해야 할 취향이자 하나의 의견이 될 뿐이다. 절대적으로 의지할 단일한 신념 대신, 이러한 가치관 저러한 가치관을 그때그때 시소 타듯이 무게중심을 옮기며 살아가는 '유동성'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38-39p, '밀레니얼과 시소의 세계관')

 

(…) 처음 386세대가 주목받았을 때 이미 그들은 청년으로서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후에는 대통령을 탄생시키며 시대의 '주역'이었다. X세대 역시 기성세대가 베풀어주는 문화를 누리기보다는 20~30대에 자신들만의 문화를 창출하며 시대를 이끌어갔다. 지금처럼 모든 힘을 쥔 기성세대가 정치에서든 문화에서든 청년들을 간택하거나 내치면서 휘두르는 구조가 그리 공고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윗세대가 이미 정치와 문화를 선점하고 자본과 권력을 토대로 이를 공고히 하면서, 그 아래 세대가 가지게 된 것은 절망이나 굴종이다. 이미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해진 세대, 그에 '아프면 환자지'라고 대답하는 세대, 다시 N포 세대로 여전히 불리고 있는 세대와 거기에 '포기도 선택이다'라고 항변하는 욜로 세대는 모두 같은 세대다. 이 세대는 윗세대가 결정하는 사회에 살면서 윗세대가 만든 문화를 소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저 정치적으로는 '절망과 포기'를 이따금 논할 수밖에 없고, 문화적으로는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정도다.

청년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데서 차단되고 사회와 정치에 새로운 피를 수혈시키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는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72-73p, '아재들의 전성시대, 청년들의 절망시대')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손쉽고도 자극적이며 강렬한 방법이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반으로 나눈 일에는 모종의 쾌감이 동반된다. 누군가를 '규정'하거나 '낙인찍는' 순간 우리에게는 어떤 인식의 쾌락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스스로가 어떤 '통찰력'을 가졌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통찰력이란 일종의 힘이다. 타인을 규정할 수 있는 힘, 누군가를 꿰뚫어 보았다는 자부심, 나아가 아군과 적군을 나누어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이 일에 동반된다. 이런 쾌락이 이제 우리 사회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다.

(273-274p, '타인을 낙인찍는 쾌락에 관하여')

 


 
이 책의 좋았던 점은, 단순한 현상 제시나 해석에 그치지 않고 여러 장에 걸쳐 적절한 방향성이나 해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처한 막막한 현실과 미래, 그리고 포기와 절망에 대해 담담하고도 날카롭게 그려낸다. 그러나 그런 혹독하고 냉혹한 상황에서나마, 밀레니얼 세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추구해야 마땅한 여러 이상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제안한다는 점에서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이 사회에는 여러 지엽적인 문제들이 있다. 구분하고 집중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리되어 보이는 문제들 또한 넓은 차원에서 이어져 있고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인식에 계속해서 도달해야 한다. 그것이 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을 붙잡을 수 있는 시작이다.

(114p, '청년 문제의 착시')

 

나는 혐오와 매도 그리고 몰이해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싫어서 이해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떤 잘못의 대가를 치른다면, 그것은 이해하지 않은 일의 대가가 될 것이다. 이해하지 않은 일, 손쉽게 증오한 일, 속 편하게 이해를 포기하고 혐오를 택한 일에 대한 결과는 그리 우습거나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삶을 적당한 선에서 흔들어놓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151p, '가부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의 한국, 청년, 남성')

 

친절은 상대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순간에 대한 묘사다. 달리 말해 환대는 타인을 향한 내 안의 '올바름의 기준'이 무너진 폐허에서 피어오른다. 진정으로 친절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무너져 있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 내 안에 쌓아 올린 편견의 성벽을 따라 타인을 만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 있는 채로, 매번 새로운 영혼으로, 갓 알에서 태어난 어린 새의 마음으로 타인을 대해야 한다. 친절 안에서 가치의 기준은 매번 새롭게 탄생한다. 내가 환대한 자, 내가 사랑하는 자, 나와 시선과 육성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 자가 새로운 기준이 된다. 그래서 친절은 역동성의 다른 이름이고 새로움의 징표이며 어려운 일이다.

(295-296p,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원더>')

 


밀레니얼 세대의 삶은, 부정할 수 없이, 이전 세대의 그것에 비해 희망을 품기 어렵다.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어있으며, 분노와 모독과 혐오가 가득 차 있다. 모든 것은 불명확하고 불안하며,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곤 아름답고 세련된 사진으로 남기는 일상의 조각들 뿐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이 책에는 그런 슬프고 우울한 현상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마음이 쓰리지만은 않은 것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불운하고도 독특한 세대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일관적으로 느껴져서다.

책의 흐름에서 떼어놓고 생각해봐도 '실패로부터 성장한다는 막연한 믿음에 대하여'라는 글은 너무 좋았다. 마음에 깊이 와 닿아서 몇 번이고 읽었다. 어쩌면 이 글이 밀레니얼 세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힘을 내라든가, 희망을 가지라든가, 노력하라든가, 극복하라든가. 그런 말들은 없다. 이 책이 밀레니얼 세대들에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그저 '나와 너'의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모습과 내면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안쓰러워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 그런 방식으로 작가는 독자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나는 사람이란 많이 다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보호하고 소중히 하며, 상처 입을 수 있는 일들을 너무 쉽게 만들지 않고, 실패들이 나를 성장시켜줄 거라 막연히 믿지 않으며, 삶을 조심히 대하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그렇게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다면 지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종종 너무 가혹한 상처들로 괴물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혹은 정말 병자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 반면, 너무 많은 상처로 성인이 된 사람은 그다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상처와 실패가 너무나 흔한 세상일수록 그런 상처들이 나를 어떻게 할퀴어왔는지를 더 섬세히 알고, 치유하고, 다독이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런 실패쯤이야, 그 정도의 상처쯤이야 다들 겪는 거지 뭐, 원래 다 그런거 아니야, 하는 마음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상처와 실패가 흔한 사회가 결코 정상은 아니라고, 가혹한 일들을 버티며 상처입기보다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떤 실패나 상처는 당연히 이겨낼 수 있는 세균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이루는 많은 것들은 결코 씻어낼 수 없는 흉터 같은 상처들일 것이다.

(116-117p, '실패로부터 성장한다는 막연한 믿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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